에스키모 증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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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한 뉴스기자가 안지쿠니 호수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이누이트 마을에 대한 기사를 썼다.

마을 사람들은 가끔씩 마을을 거쳐가는 모피 사냥꾼들을 언제나 환대했다.

그러던 1930년, 마을 사람들과 잘 아는 사이였던 조 라벨이라는 모피 사냥꾼이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사람들 모두가 사라져 있었다.

당시 마을과 에스키모 주민이라 추측되는 사진

 

아직 기우던 옷가지들에는 바늘이 꽂혀 있었고 화덕에는 음식이 올려져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그는 마을 사람들이 무슨 연유로 급하게 떠나야만 했다고 결론 지었다.

 

당시 썰매 견은 에스키모인들이 재산 1호로 생각하는 보물이다.

아무리 급하게 마을을 떠나야 한다 해도 가장 큰 재산으로 여기던 썰매까지 두고 가야 했을까?

에스키모인들이 사라졌을 당시 집안에는 따뜻한 음식이

있는 상태였었는데, 썰매 견의 먹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더 괴이한 것은, 7마리의 썰매개가 굶어 죽어 있었으며

하나의 묘지가 파헤쳐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 묘지를 둘러싼 돌들이 온전했기 때문에 라벨은 동물의 소행이 아니란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조 라벨은 곧바로 캐나다 경찰에 이를 신고했고 경찰은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수색을 벌였지만 결국 아무도 찾지 못했다.

6개의 에스키모 텐트로 이루어진 마을이었으며

사라진 사람들은 남녀와 아이들을 합쳐 25명이라 전해진다.

그리고 사라진 마을의 모습이라며(마을이라기 보다는 원뿔 형태의 작은 유목민 텐트들이 서 있는 캠프 같은 모습) 한 장의 사진이 같이 게재되어 있는데 후에 그 사진은 1909년에 찍은 것이며 기사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 졌다.

이후 이 사건은 1966년 애드워드의 책에서

다시 언급되지 전까지 사람들로부터 잊혀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정황과 믿기 힘든 증언들로 에스키모 실종 사건은 지금까지도 "베니싱 현상"으로만 남은 체 밝혀지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