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메즈 페이스(Bélmez Faces) 사건은 20세기의 가장 널리 전해지고 당혹스러운 초자연적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
벨메즈 데 라 모랄레다(Bélmez de la Moraleda)의 작은 산간 마을에는 소규모 농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1971년 여름
마리아 고메즈 페레이라(Maria Gomez Pereira) 부인은 부엌 바닥에 검은 얼룩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분명 아무것도 흘리지 않았고 얼룩이 생길 이유도 없었습니다.
의문은 들었으나 페레이라는 바닥을 닦으면서도 큰 의미는 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얼룩은 7일에 걸쳐 신비한 얼룩은 선명한 얼굴 형상으로 변했습니다.
마리아가 아무리 세게 닦아도 사람얼굴의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고,더욱 선명해 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마을사람들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영매였던 마리아 페레아가 흉상의 원인이라는 흉흉한 소문 까지 돌기 시작 했습니다.
떠돌던 소문을 들은 마리아의 남편 후안, 아들 미구엘은 곡괭이로 사람얼굴의 형상 있는 바닥 전체를 부숴 버렸습니다.
그들은 바닥을 새로운 콘크리트로 다시 깔았고, 그로 약 일주일 동안은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보다 더 또렷해진 새로운 여러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다 이소식은 널리 퍼져 Bélmez 시장에게 들어가게 되었고, 시장은 마리아에게 Bélmez 시의 지원을 약속했고, 전시와 연구적 가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시의회에 추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요청은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다시, 바닥이 수리되면서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곧 가족을 바라보는 얼굴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습니다.
일부는 같은 해 12월에 퇴색되어 사라졌으나 곧 새로운 것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집 바닥은 순식간에 수많은 얼굴들로 뒤덮였습니다.
이소식은 널리 퍼져 지역의 관심이 과열되었고 지역 경찰까지 투입되어 집결하는 군중을 통제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집에 얼굴이 나타난 것일까요?
다음 해 4월, De Argumosa 교수가 사건 소식을 듣고 Mardrid에서 Bélmez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연구를 시작했고,
1972년 6월 6 일 , 바닥에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나 점차 표정이 바뀌는 듯했다.
몇 가지 다른 얼굴이 더 등장하여 추가 조사가 촉발되었다.
사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바닥 위에 호일을 깔았지만 다시 얼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17세기 그라나다 주지사(벨메즈 출생)가 이지역 가족 다섯 명을 살해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여러 역사적 문서를 찾았다 했습니다.
살인 현장의 소재는 불분명하지만 페레이라 가문 근처 나 내부 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 된다고만 하였으며,
이 집터는 오래전 묘지 자리에 지어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사를 위해 실제로 바닥을 파기 시작했고 집의 아래에서 많은 인간의 유골가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많은 유골에는 두개골이 없었습니다.
왜 유골의 두개골이 없는 것일까요?
아직 까지 두개골이 없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 진바가 없습니다.
일부 현대보고서에서는 발굴된 유적이 약 700년 전의 것으로 추정 하였습니다.
유해는 인근 가톨릭 묘지에 다시 안장되었습니다.
유해을 모두 제거하고 바닥을 교체한 뒤 얼굴은 과거의 일이 될 것으로 모두 예상 했습니다.
지난 몇개월의 일이 었고 마을은 일상적인 생활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2부 계속